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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7 +70,7 @@ It is unfortunate, however, when considering regions where this is impossible.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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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단에서 소개했던 사쓰에이 전쟁을 다시 짚어보면 재밌는 점은 조선에 비해 훨씬 좋은 교환비를 낸 점보다 일본 중앙정부가 아닌 행정구역 중 하나인 사쓰마 번이 독단적으로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조선에서는 이런 전쟁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조선은 굉장히 중앙집권적인 체제였기 때문에 지방정부에서는 적절한 형태의 상비군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반대로, 일본은 유럽의 봉건제와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중앙집권체제에도 불구하고 다이묘라 불리는 지방의 영주들의 세습 행정구역이 따로 존재했으며 이들은 상호간의 경쟁 형태를 띄었다. 따라서, 각 번은 각자의 군사력 또한 갖출 필요가 있었다. 막부의 통일과정은 명분이 아닌 힘에 의한 지배였기 때문에 각 번은 중앙정권의 힘이 약해지면 언제든 배신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일본의 문화는 충성과 의리보다는 힘이라는 실리에 기반한다. 실제로, 미국 페리 제독에 막부가 굴복하는 형태(쿠로후네 사건, 1853)를 보이자 그때부터 각 번은 막부 타도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경쟁 속에서 일본은 근대화를 이끄는 엘리트들이 탄생하고 지방세력의 결합인 삿초동맹(1866 결성)은 막부를 타도한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세계 2차대전 속에서 폭주하는 일본 군부의 주축세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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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화된 조선은 지방의 경쟁력을 극히 제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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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화된 조선은 지방의 경쟁력을 극히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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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중앙집권체제는 그렇지 않은 체제보다 더 강한 경제력도 군사력도 보유하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조선의 중앙집권체제는 왜 적절한 경제력도, 상비군도 갖추지 않는 시스템에 다다랐을까? 먼저 경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착취적 경제제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인들은 전혀 노동을 하지 않았으며 일천즉천에 따른 수많은 노비들은 당연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구한말이 되지 않는 이상 신분이동은 불가능 했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힘들었다. 군사적인 관점에서는 더 아이러니하다. 조선은 이성계라는 전설적인 무장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1592년에 시작된 일본과의 다년간의 처절한 전쟁, 그리고 두차례 이어진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 군사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만한 과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와의 전쟁 시기 조선의 왕이었떤 인조는 쿠테타로 왕이 된 인물이었으며 집권 후 국경을 지키던 정예 군대의 반란을 겪었다는 맥락이 조선에는 적용된다. 그 이유로 지방군의 반란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염려하여 지방의 상비군을 두는 형태가 아닌 침공당할 시 중앙정권의 지도를 통해 지방군을 조직하는 다소 비효율적인 형태로 제도를 정비한다. 정세가 안정적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지방 방어를 수행하는 시스템을 해체한 직후 벌어진 전쟁에서 왕은 자신의 수도 근처의 산성에서 청나라의 기동부대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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