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단에서 소개했던 사쓰에이 전쟁을 다시 짚어보면 재밌는 점은 조선에 비해 훨씬 좋은 교환비를 낸 점보다 일본 중앙정부가 아닌 행정구역 중 하나인 사쓰마 번이 독단적으로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조선에서는 이런 전쟁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조선은 굉장히 중앙집권적인 체제였기 때문에 지방정부에서는 적절한 형태의 상비군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반대로, 일본은 유럽의 봉건제와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중앙집권체제에도 불구하고 다이묘라 불리는 지방의 영주들의 세습 행정구역이 따로 존재했으며 이들은 상호간의 경쟁 형태를 띄었다. 따라서, 각 번은 각자의 군사력 또한 갖출 필요가 있었다. 막부의 통일과정은 명분이 아닌 힘에 의한 지배였기 때문에 각 번은 중앙정권의 힘이 약해지면 언제든 배신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일본의 문화는 충성과 의리보다는 힘이라는 실리에 기반한다. 실제로, 미국 페리 제독에 막부가 굴복하는 형태(쿠로후네 사건, 1853)를 보이자 그때부터 각 번은 막부 타도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경쟁 속에서 일본은 근대화를 이끄는 엘리트들이 탄생하고 지방세력의 결합인 삿초동맹(1866 결성)은 막부를 타도한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세계 2차대전 속에서 폭주하는 일본 군부의 주축세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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